28개월 아진이와 겁쟁이 하늘이의 8월 남해 700km 대장정

여행2026년 4월 12일6분 소요1
28개월 아진이와 겁쟁이 하늘이의 8월 남해 700km 대장정

이 글의 핵심 요약

28개월 아진이와 반려견 하늘이를 데리고 호주 같은 남해 양떼목장을 다녀왔습니다. 비행기 대신 선택한 700km 장거리 운전과 짐 싸기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여행의 현실을 기록합니다.

비행기 대신 선택

한 남해 700km 대장정의 시작

주차장 지면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장난 아니었어요. 2024년 8월 중순이었는데, 아진이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카시트에 앉아있는 걸 보니 벌써 미안해지더라고요. 사실 호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굴뚝같았는데, 28개월 아진이랑 낯선 곳 가면 밥도 못 먹는 하늘이를 데리고 비행기 탈 엄두가 도저히 안 났어요. 남편은 그냥 가까운 데 가자고, 그 말이 맞았는데 제가 우겼거든요. 남해에 호주 같은 양떼목장이 있다는 말 한마디에 꽂혀버린 거예요.

준비 과정부터 이미 진이 빠진 상태였던 것 같아요. 전날 밤에 잠도 못 자고 짐을 쌌는데, 캐리어 두 개가 부족해서 보조 가방까지 꺼냈거든요. 남편이 옆에서 그냥 병원이나 가보자고, 아진이 컨디션 안 좋아 보인다고 한 마디 했어요. 그 말이 맞았는데 저는 여행 가고 싶은 욕심에 들은 체도 안 했습니다.

남편은 짐 줄이라는데 제 손은 계속 움직였어요

현관 앞에 쌓인 짐을 보니까 한숨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커플 여행이라면 정말 지갑이랑 여권만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겠지만, 애개맘의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아진이 기저귀 한 팩을 통째로 넣고, 하늘이가 평소에 먹던 사료에 간식, 그리고 혹시 몰라 챙긴 휴대용 유모차까지 넣으니 차 트렁크가 꽉 찼어요.

남해 양떼목장 입장료는 성인 기준 5,000원 정도로 저렴한 편이에요. 먹이 주기 체험용 사료도 포함되어 있어서 가성비는 좋다고 들었거든요. 하지만 가는 길에 드는 기름값과 톨게이트 비용, 그리고 아진이 달래려고 휴게소마다 들러서 산 장난감 값을 생각하면 예산은 이미 초과 상태였죠. 실용적인 남편은 계속 '가서 사면 된다'고 중얼거렸지만, 아진이 피부가 예민해서 쓰던 로션이랑 세제를 다 챙겨야 마음이 놓이는 걸 어쩌겠어요.

짐을 줄이지 못한 제 고집 때문에 출발 전부터 남편이랑 약간 냉전 상태였어요. 결국 제가 다 챙긴 가방을 남편이 낑낑대며 차에 실었는데, 그 뒷모습을 보니까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복합적인 감정이 들더라고요. 예산은 대략 3박 4일에 150만 원 정도로 잡았는데, 준비물 사는 데만 이미 20만 원 넘게 쓴 것 같아요.

네 시간 내내 덜덜 떨던 하늘이와 뒷좌석의 아진이

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하늘이의 떨림이 제 허벅지까지 느껴졌어요. 낯선 엔진 소리랑 진동 때문인지 하늘이는 제 무릎 위에서 내려갈 생각을 안 하더라고요. 이동장 안에 넣어두고 싶었지만 너무 낑낑거려서 결국 안아줄 수밖에 없었죠. 아진이는 카시트 벨트가 답답한지 발차기를 시작했고, 저는 뒤를 보며 노래를 불러주느라 목이 다 쉬어버렸습니다.

중간에 들른 휴게소 주차비는 다행히 무료였지만, 거기서 쓴 간식비가 점심 식사비만큼 나와서 당황했어요. 아진이가 고른 솜사탕이 6,000원이나 하더라고요. 하늘이는 휴게소 구석 풀밭에서 겨우 소변 한 번 보고는 무서워서 다시 차로 도망가 버렸어요. 남편은 운전하느라 지치고, 저는 애랑 개 케어하느라 지쳐서 차 안은 침묵만 흘렀습니다.

장거리 운전할 때 아이들은 2시간마다 한 번씩 쉬어주는 게 좋대요. 저희는 아진이가 잠들었을 때 최대한 멀리 가보려고 3시간을 내리 달렸는데, 그게 화근이었는지 깨자마자 자지러지게 울더라고요. 그때 그냥 남편 말대로 가까운 경주나 갈 걸 그랬나 싶어서 경주 여행 기록을 다시 찾아보기도 했어요.

막상 도착한 목장에서 아진이의 예상치 못한 반응

드디어 도착한 남해의 풍경은 정말 호주 대초원 부럽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어요. 초록색 구릉지 너머로 푸른 바다가 보이는데, 그 순간만큼은 700km를 달려온 피로가 다 녹는 것 같았죠. 하지만 감동은 딱 5분이었어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자마자 아진이가 무섭다고 울기 시작했거든요.

양들이 생각보다 크고 적극적으로 다가오니까 아진이는 제 다리를 붙잡고 떨어지질 않았어요. 제가 기대했던 건 아진이가 환하게 웃으며 양에게 풀을 주는 모습이었는데, 현실은 양보다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를 줍는 데 더 열심이더라고요. 하늘이는 양들이 내는 '메~' 소리에 놀라서 가방 깊숙이 숨어버렸고, 결국 남편이 하늘이가 든 가방을 메고 제가 아진이를 안고 그 넓은 목장을 돌았습니다.

양 먹이 주기 체험은 1인당 한 바구니씩 주는데, 아진이가 안 하겠다고 해서 제가 다 줬어요. 양들이 제 옷을 물어뜯으려 해서 당황했는데 남편은 옆에서 사진만 찍고 있더라고요. 목장 안에는 유모차를 끌기 힘든 오르막이 많아서 휴대용 유모차는 차에 두고 오길 정말 잘했다 싶었습니다.

땀은 비 오듯 흐르고, 아진이는 계속 안아달라고 하고, 이게 힐링 여행인지 극기훈련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본 카드 명세서와 낮잠

숙소는 아진이를 위해 큰맘 먹고 키즈 풀빌라로 예약했어요. 1박에 40만 원이 넘는 거금이었는데, 아진이가 물놀이를 좋아하니까 그 정도는 써도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숙소에 도착하니 아진이는 욕조 물놀이 10분 만에 졸리다고 칭얼거리더니 그대로 잠들어버렸습니다.

남편이랑 둘이 거실에 앉아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를 마시는데, 휴대폰에 찍힌 카드 결제 문자들이 줄줄이 오더라고요. 주유비, 톨게이트비, 식비, 입장료, 그리고 아진이 달래려고 산 기념품까지 합치니 이번 여행 예산이 훌쩍 넘어있었어요. 가성비 숙소를 잡고 차라리 맛있는 남해 멸치쌈밥을 제대로 사 먹을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살짝 밀려왔습니다.

그래도 자고 있는 아진이 얼굴을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비록 양은 무서워했지만, 넓은 풀밭을 뛰어다닐 때 냈던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거든요. 하늘이도 숙소에 오니 안심이 됐는지 사료를 평소보다 잘 먹어줘서 다행이었어요. 여행은 결국 이런 작은 순간들 때문에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2024년 8월 18일, 여행 그 후의 기록

집에 돌아온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어요. 아진이가 자꾸 배를 만지면서 아프다고 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더라고요. 여행 중에 유산균을 챙겨갔어야 했는데, 냉장 보관해야 하는 제품이라 상할까 봐 빼놓고 간 게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 D+1: 아진이 대변 상태 확인 (약간 딱딱함), 수분 섭취 늘림
  • D+2: 하늘이 식욕 부진 (여행 후유증인 듯), 평소 먹던 캔 사료 섞어줌
  • 총 지출: 약 168만 원 (예산 150만 원 대비 12% 초과) 하늘이는 집에 오자마자 자기 방석에 들어가서 나오질 않아요. 푸딩이는 저희가 돌아오니까 반가운 척하다가 다시 도도하게 캣타워 위로 올라가 버리더라고요. 아진이는 이제야 컨디션을 회복했는지 거실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놀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배운 건, 아이랑 강아지랑 함께하는 여행에 '완벽한 계획'이란 없다는 사실이에요.

아직도 그날 챙기지 못한 유산균이 마음에 걸려요

다녀온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아진이가 화장실 갈 때마다 제가 더 긴장하게 돼요. 그때 깜빡하고 안 챙겨간 영양제 때문에 아진이 리듬이 깨진 건 아닌지, 아니면 남해에서 먹었던 음식이 문제였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거든요. 남편은 그냥 애들은 다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 하지만, 엄마 마음은 또 그게 아니잖아요.

다음 여행은 조금 더 가볍게 가고 싶은데, 아마 그때가 되면 또 불안해서 짐가방을 꽉꽉 채우고 있을 제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래도 이번에 호주 느낌 물씬 나는 사진들을 많이 건져서 다행이에요. 아진이가 조금 더 크면 그때는 진짜 비행기를 타고 더 넓은 세상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엄마, 양 또 보러 가요!" 며칠 전 아진이가 갑자기 양 인형을 들고 와서 이렇게 말하는데, 그 힘들었던 기억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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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기준일 2026-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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